I.극장 가는 길

극장 보러 간다.극장 구경 간다.극장에 가서 영화를 본다.

우리가 어렸을 적 기억 가운데 잊어버린 척 들추어 내고 싶지 않아서 그냥 기억 저편에 던져놓고 애써 눈길조차 보내지 않다가,가끔은 남 몰래 들여다보던 부끄러운 기억이나 나쁜 짓거리 감추고 싶던 음험한 기억더미가 있다면 나의 그것은 오로지 “영화보기”로 모아진다.

난생 처음 거짓말의 시작과 영화를 보고 싶어 돈 훔치기,동시 상영 영화 두 편을 보고 난 후 재미있는 한 편을 더 보다가 동네 친구 셋과 배가 고파 입안에는 말간 침만 꼴깍 꼴깍 삼켜가며 밤 늦게 집에 돌아와 동네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그 무모함,방과 후의 은밀한 혼자만의 외출,그 모두가 나의 경우 영화로 고리고리 매듭지어 있었다.

정말 내 유년의 어둡고 은밀한 기억과 비밀은 온통 영화뿐이다.밖과 단절 된 어두운 영화관처럼.

아직 얼지 않은 기억을 꺼내 스틸 사진처럼 몇 컷을 들여다본다.

우등생에 주어지는 선생님의 신임을 등에 업고 맹목적인 아이들 눈에 가득 담긴 선망을 무기로  우등생답게 전혀 폭력적이지 않고 강요하거나 협박하지 않고 자발적인 친구의 의지로 친구 돈으로 표를 사게 하여 영화를 보고, 그날 그 친구는 목욕비로 돈을 타왔기 때문에 영화를 본 후 둘이 산내에 있는 냇가 알바위로 가서 작은 조약돌로 나는 그 친구 목에 낀 묵은 새까만 때를 목덜미가 빨개지도록 문질러 주었다.

또 한 가지는 방과 후 전에 책가방을 집에 갖다 놓지않고 영화보다가 늦게 들어 온 날의 소동 때문에 무조건 책가방을 집에 놓고 떠나는 극장 순례의 길.

그야말로 극장 구경 가는 길.극장 순례의 길.

소제동의 고려극장,인동의 동화극장,대전천을 넘어가 개봉관인 대전극장,시장통의 중앙극장,내친김에 목척교를 다시 건너 신도극장까지 진출한다.

극장 포스터를 보고 영화 배우 이름과 선전 문귀를 외우고 성긴 철그물이 처진 게시판의 스틸 사진을 이어가며 영화를 머리 속에영사기를 돌려가며 모자이크한다.아, 보고싶다.

그 무렵 투명인간이 되면 나름대로 조숙한 아이들은 여탕에 들어가 실컷 구경도 하고 살짝 만져보겠다고 하였지만 나의 소망은 표를 사지않고 검표원 눈에 안 띄고 극장에 들어가보는 것이었다.

이 세계는 초등학교 5학년까지 계속되었고 헤르만 헷세의 소설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의 유년처럼 나쁜 친구와 어울리던 어둠의 세계에서 가족이 있는 밝은 세상으로 나왔다는 표현처럼 나는 6학년이 되자마자 어두운 영화관에서 아무런 금단현상 없이 영화에서 벗어나 다시 떳떳한 모범생이 되었다.아주 잘 적응한 명암순응이었다.

언제나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면 밝은 햇빛은 너무나 눈이 부시었고 웬지 부끄러웠다.

자유롭고 한껏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던 어두운 영화관의 그 홀가분하던 영화관과는 달리. 

이 밝은 세계는 고등학교3학년 가을 어느 무렵까지 자유극장에서 초원의 빛이라는 영화를 볼때까지 계속되었고 나에게 초원의 빛은 지는 저녁 햇빛이었고 해가 지고 찾아오는 밤처럼 그 후 나는 어두운 영화관을 다시 찾아나선다.

자,이제는 다시 덮어두고 영화를 보러가야겠다.뷰티플 마인드라는 영화를.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