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훈이가 형(42회)이 신장이 안좋은것 같다는 얘길 했다. 나는 한번 만났었는데 과묵하고     단아해 뵈는게 전형적인  충청도 선비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늘 훈이가 제 심경을 담은 메일을 보내왔길래 올린다. 본인 허락없이 무단 게재 하지만 양해하리라 믿는다.            -----------------------------------------------------------------------------------

형으로부터 목요일 수술한다고 연락이 왔다.   
얼마전부터 그러리라 얘기는 들어왔지만 크게 슬프거나 놀랍지 않은게 이상했다. 
아니면 전화기 넘어 들리는 담담한 말투가 그리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전화를 끊고 나자 갑가지 여러 가지 생각이 난다. 

1.엄마 얘기

8남매중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엄마와 살아왔다.고3때 1년간 셋째,네째 누나 둘이랑
단칸방 자취 생활한 것 빼곤 줄곳 엄마와 내가 장가가기까지 36년을 같이 한집에서 살았다.
결혼후 바로 형한테 엄마를 빼았겼다.
큰아들로서 부모님을 모시겠다는 전혀 어찌할 수 없는 형의 강력한 의사에 무조건 항복.
나는 지금도 한국 사회에서 살고 부모님을 모시는 장남들은 무조건 존경한다.
거의 술값으로 얄팍해진 내 월급을 잘 건사해주셔서 신혼에 걸맞지 않는 조금은 넓은 아파트를
장만해 놓으시고, 안방은 내가 쓰고 건넌방에서 1주일 같이 사시고는 형한테 가셨다.
얼마간은 내가 모시고 싶었는데.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아침마다 걸르지 않는 아침 문안 전화뿐.

그렇게 돌아가시기까지 10년을 형과 함께 하시고 1998.11.20(음10.2)대전에서
형집 안방에서 주무시듯 돌아가셨다.(형집 안방을 부모님이 쓰셨다)
여든 한살에.
전날 IMF시절에 모처럼 큰 오더를 받아 납품하고 들뜬 마음에 친구랑 술 퍼 마시고
노래도 하고 골아 떨어진 이튿날 아침 7시.형의 전화(형은 서너 시간 지난 후 나한테
알려줬다)
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그럴때 엄마는 저쪽길로 넘으셨던 것이다.

차타고 대전 가는 2시간 내내(처남이 운전을 해줬다) 그냥 흘러내리던 눈물이 콧물과 범벅이
되고 꾹꾹 참아내던 울음 소리를 드디어 꺼이꺼이 터뜨려 버렸다.(왜 꺼이꺼이 운다고 하는지
이해가 된다)

장례후 형한테 들은 얘기.                                                                                              돌아가시기 1주일 전부터는 일체 자식 걱정을 끊으시고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고. 전 같으면 훈이 사업은 잘 된다냐,학수는 딴 짓 안하고 회사 잘 다니냐?,
융이 그 놈 참 맹랑하더라 등등 자식들 얘기를 끊임없이 형한테 물으시다 입을 꾹 다무셨다고.

가실 때는 그렇게 업보 같은 자식들 다 놓으시고 혼자 가시는 가보다.힘들어서.

재작년 형이 은행 지점장으로 명퇴하고 앞으로 2년간(60살)까지 우리회사에 비상근으로          일주일에 이틀정도 올라오시고 싶다고 했을 때 친구와 의논하고
비상근 고문으로 모시고 약소하지만 얼마간 월정 여비를 드리자고 결정하고 난 후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울컥 눈물이 솟고.
"엄마, 나 형한테 좋은 일 한 것 같아요"

2. 아버지 얘기

"아버지,내가 누구여?"(반말임)
"글씨,니가 훈이 아녀?"
이렇게 시작한다.가끔 대전 형집에 들를 때 아버지하고 대화.
아버지는 올 여든넷.엄마보다 두살 연하이다.
연세가 연세인 만큼 머리가 맑지 않으시고 소위 치매 증상을 보이신다.
젊을 때 과격한 성품이다가 치매가 걸리면 온순해지고 온순한 성격이 치매가
걸리면 난폭해진다고 한다.
그런데 울 아버지는 요새 굉장히 온순하시다.
기억의 엉클어짐.
얼마전 아버지하고 대화는 우리 8남매 신상 확인을 끊임 없이 반복했다.
"아버지,아들이 몇명야? 이름은?"
"글쎄,3형제.사수,훈이,학수"
이제는 아버지 기억도 점점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셨나보다.
엄마라 함은 할머니 얘기고 형제라 함은 우리 형제가 아닌 이미 다 돌아가신
큰아버지들 얘기다.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다 그냥 거슬러 올라 갈데가 없으면.....

내가 요새 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 방에서 내 막내 융이와 옆에 자는 것 뿐.
냄새를 참으며.잠깐이니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잃는 다는 것도 익숙해지는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엄마때처럼 꺼이꺼이 울지 못할 것 같다.

3. 형 얘기

나보다 10살 위.
가끔 얼마간 돈을 부쳐드리면 바로 다시 내 통장으로 입금되어온다.지겨운 고루함과 엄격함.
형 동기들 나이가 59,아홉수가 있으니 서로 건강 조심하자는 얘기를 쓴 형의 글을 내가
KEY IN 하여 동문 홈페이지에 올린 적이 있는데.
화,목 이틀 출근하여 찌라시 이면지에 잡문을 적어주면 나는 문서화하여 형 동기
홈페이지에 올린다.
목요일 신장 수술을 한다.
굳건하게 믿고 기댔던 형의 자리가 흐트러지는 것이다.
누나들과 형한테 얘기 않기로 하고 의논했던 아버지 우리 집에 모시는 일.
병원에 들렀다 대전에 내려가면서 나한테 한 전화
"아버지는 절대 신경 쓰지말고 어린 애들한테 할아버지 인상 남겨주는 것도
좋지 않으니 딴 생각 말아라."
형은 장남이고 나는 역시 장남이 못 된다.
엄마,알고 계세요?

아, 엄마.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