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수(2017-10-20 11:51:55, Hit : 916, Vote : 0
 http://blog.daum.net/ds1472
 아! 백제금동대향로

    아! 백제금동대향로
                                                
    / 송대수

진흙 속에서 천오백 여 년의 긴 어둠을 깨고 백제의 심장이 툭! 툭! 뛰기 시작하였다. 검은 피가 흐르는 차가운 뻘 속에서 밤새 불을 밝히고 발굴자들은 얼어가는 손 불어가며 심장수술 하듯 물 한 방울, 진흙 한 점 털어내고 닦아내었다. 위용을 드러낸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는 찬란한 옛 모습 그대로 녹 하나 슬지 않고 세세한 선까지 살아 있어 봉황의 눈매나 악사의 표정 하나하나 생생하게 꿈틀거렸다.

금강의 볕은 따가웠다. 볕은 공주를 지나 부여로 흐르는 물결을 더디 흐르게 하였고 물결 위로 양안을 달구었다. 아내와 함께 국립부여박물관을 찾아가던 여름날의 강변길에서 매미는 거칠게도 울었다. 천사백 여 년 전 백제의 여름, 통곡의 강에 거친 숨소리를 남겨둔 듯하였다. 아내는 부여에서 11년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주에서 10년을 근무하고 교직을 떠났으니 백제의 숨소리가 남달리 들린다고 했다. 그 때문에 백제의 옛터를 자주 찾던 우리들은 공주나 부여의 고분군과 석탑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참히 파괴되고 사라져버린 빈 터에서 토기와 기와 몇 조각만으로 찬연했다던 한 왕국의 역사의 한을 달래야만 했다. 한 나라의 패망과 함께 모든 것을 흔적 없이 지워버리는 역사가 되풀이 된다면, 지난한 세월 주변 강국들과의 거친 대결과 간섭에도 불구하고 담대하게 이루어 온 우리의 자존심마저 무너져 버리지나 않을까 두려워지기도 했었다.
박물관에 도착하여 백제금동대향로가 전시되어 있는 제2 전시실의 특별실로 곧장 들어갔다. 향로는 어둠 속에 조명을 받으며 중앙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전에 찾아왔을 때는 아름다운 형상에 감탄만 하였을 뿐 향로와 혼연일체가 되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천장 중앙에서 내려오는 빛을 받아 봉황의 눈이 먼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위엄을 갖춘 봉황의 작고 예리한 눈빛에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향로의 부분 부분이 살아나고 깊은 산중의 봉우리들 사이를 무언가 찾아다니고 있었다. 상상의 동물들은 내게 달려들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며 그 산속을 헤매다 거문고를 연주하는 악사를 만났다. 눈은 가늘게 뜨고 인자한 얼굴의 그를 장인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섬세한 손놀림과 절제된 감성으로 그 기운이 하늘로 이어갈만한 위인일거라고.

장인은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었다.
‘왜 우리가 모르는 사람과 동물들이 많습니까?’
‘애초에 선조들이 이루는 산하에는 신화가 있기 마련이지. 신화가 없는 종족들은 야만족에 불과하지, 우리 선조들은 북방에서 신화로 시작하여 영웅들과 자연의 조화로 전설을 이루며 자네들에게 전해지는 것이지’
‘왜 지금의 우리는 신화와 전설을 잘 모르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 영역이 약해져 타 영역에서 그 신화와 전설을 가져갔거나 스스로 자존감을 갖지 못해 그런 것이지’
나는 갑자기 휘청거리며 어지럼증을 느꼈다.

관산성 전투에서 부왕인 성왕까지 잃은 위덕왕은 능산리에 사찰을 지어 부왕의 혼을 달래고 슬픔에 젖은 백제인들을 위무하고자 하였다. 참담함에도 고결한 뜻을 받든 장인은 깊은 고민 끝에 왕과 백성의 염원을 담아 하늘에 전해줄 향로를 떠올렸다.
웅진에서 백제 중흥의 기반을 마련한 무령왕께 장인의 할아버지는 금관을 만들어 바쳤으며, 선왕인 성왕의 사비천도를 지켜본 그는 대대로 쇠를 부리며 살아온 야공이었다. 북에서 밀고 내려오는 고구려에게 빼앗겼던 백제의 근거지 한강유역을 선왕께서 되찾아 국권을 회복하는가 하였던 차에, 이번에는 신라가 그 땅을 앗아가고 선왕의 육신까지 능멸하였다 하니 장인은 밤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대장간의 쇳물은 성질이 사나워 쉽게 다루기 어려웠다. 장인은 잡념부터 비워야 했다. 쇳물을 녹이기 전 불 밝히고 향을 살라 천지신명께 고하고 선왕과 백제의 염원이 담긴 향로를 만들 수 있게 해달라고 무릎이 닳도록 엎드려 절하고 또 절하였다.

향로는 진흙 속에서 자라나 피어나는 연꽃에서 만물이 신비롭게 탄생하는 연화화생蓮花化生과 음양陰陽의 진리 속에 모든 백제의 염원을 담기로 하였다.
밑단 좌대는 상서로운 용이 용트림하며 구천지하九泉地下의 어둠의 세계에서 광명光明의 세계로 여의주를 치솟아 올리는 웅장한 모습을 세련된 투각기법으로 주조하여 표현하였다.
용의 입으로 고귀하게 받들어 올려진 몸체는 연꽃 봉오리가 막 피어나는 모습으로, 하단과 상단으로 나누고 내부에는 향을 사르도록 만들었다. 이는 백제의 모습과 이상이다.
모든 이의 바람을 오롯이 모아 하늘로 밀어 올리듯 피어나는 연꽃잎 한 장 한 장 마다 끝부분을 살포시 휘어 튀어나오도록 몸체 하단에 장식하였다. 그 연꽃잎 위에 무예를 하는 사람과, 황새, 악어, 물고기를 삼키는 짐승과 상상의 짐승들을 도드라지게 한 가지씩 새겨 넣었다. 속세의 갖은 고난과 음습함 속에서 자라 꽃을 피워내는 연꽃처럼, 지금 비록 천둥과 번개가 쳐 힘들고 치열한 상황이지만 머지않아 맑고 아름다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모두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향로 몸체 상단에는 이상향으로 가기 위한 관문으로 신화의 세계를 펼쳐보았다. 불가와 도가 그리고 전래의 수많은 깨달음과 전설 같은 오래된 이야기들을 함께 체득하지 못하면 부질없는 수고에 인간들은 괴로움이 더할 뿐만 아니라 존재의 가치마저 상실할 테니. 화염이 치솟는 산봉우리와 그 사이 사이에 박산문博山文과 바위들, 긴 부리 새, 포수鋪首, 뱀을 물고 있는 짐승, 사자, 호랑이, 외수畏獸, 원숭이, 인면수신人面獸身, 인면조신人面鳥身, 코끼리 탄 사람과 신화의 세계들을 새겨 넣었다. 무려 그 봉우리가 74봉이 되었다.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돋을새김으로 작업을 마치니 살아 움직이는 감동을 준다.
뚜껑 윗부분에는 가장 높은 다섯 봉우리 위에 목을 길게 늘이고 각기 다른 모양으로 봉황을 응시하는 기러기 다섯 마리를 얹었고, 그 안쪽으로 다섯 악사가 배소, 종적, 완함, 북, 거문고를 연주하는 모습을 조각해 넣었다. 다섯 명의 악사는 앉은 자세나 얼굴 표정 하나하나 각기 다른 모습으로 손가락 하나까지 신경을 써 깎고 또 다듬었다. 까닥 실수하면 또 다시 주조해야 하는 온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다.  
몸체 상단 가장 높은 곳에는 태평성대太平聖代가 되어 나타난다는 봉황이 우아한 날갯짓과 함께 춤을 추며 내려앉는 모습으로 형상을 잡았다. 이로써 음과 양의 기운이 연꽃의 몸체를 감싸도록 신성하게 만들었다.

갈기를 세우고 커다란 이빨을 드러내며 용트림과 함께 솟구치는 용은, 한 다리는 높이 치켜들어 천공天空을 움켜쥐고 세 다리와 꼬리로 바닥을 굳건히 지탱한 채, 바람과 구름과 비를 휘모는 강렬한 기상으로 연꽃인 향로 몸체를 밀어올리고 있었다. 은은히 흐르는 향연香煙은 봉우리 사이로 운해 깔리듯 잔잔히 흐르기도 하고 하늘로 치솟을 때도 있었다. 오악사가 연주하는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고 기러기들이 노래 부르고 춤추자 상서로운 영조靈鳥 봉황이 무지갯빛 하늘로부터 여의주를 부리 아래 괴고 꼬리는 치켜든 채 커다란 날갯짓을 하며 살며시 몸체 상단의 보주寶珠에 앉는다.

장인의 정성과 혼을 담은 향로는 완성되었고, 은은한 향기가 봉황의 날개를 타고 하늘로 퍼지던 날 기러기가 무리지어 날고 있었다. 위덕왕은 장인을 비롯한 온 백제인과 함께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손 모아 간절히 소원을 빌었다.

향로와 함께 심연으로 빠져들었던 나는 하늘을 덮는 듯한 새의 푸득거리는 날갯짓에 몸서리치듯 놀라고 말았다. 다른 전시실을 보고 돌아온 아내가 옆구리를 치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전시실의 어둠에도 불구하고 향로는 좌대 위에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또렷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향로의 몸체 가장 높은 봉우리에서 봉황을 옹위하듯 둘러있는 기러기를 하늘과 지상을 왕래하는 사신으로 백제인들은 믿고 있었다. 온조왕 때는 궁중으로 기러기 100여 마리가 날아들어 인걸들이 백제로 모여 번성할 것이라 하였다 한다. 백제의 원류인 북부여와 고조선, 그리고 그 이전의 선조들이 살던 광활한 북방의 땅에서 찾아와 남쪽의 왜나 남중국까지 갔다가 되돌아가는 기러기 떼를 보며, 백제인들은 고토에 대한 향수를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고구려 고분군에서 등장하는 악사들의 악기들이나 동물들도 백제금동대향로에서 볼 수 있다. 한겨레로서 깊은 삶의 뿌리였던 우리의 수많은 신화와 전설들을 장인은 향로에 하나하나 새겨 놓은 것이리라. 어둠속에서 거대한 용이 천둥과 번개로 한바탕 휘몰아치고는 검은 구름 사이로 한줄기 달빛 아래 가녀린 연꽃 한 송이를 여의주 물 듯 고요히 들어 올림은 숨 막힐 듯한 장인의 솜씨였을 것이요, 그 시대의 긴박함이었을 것이다.

격랑의 시기에 들어선 백제는 절박한 순간에도, 천지음양의 철학이 담겨 있고 불교와 도교와 민간 신앙이 백제 융합의 이상향 속에 녹아 있었으며, 그런 삼신산三神山의 이상향이 이곳 백제 땅에서 실현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백제인들은 백제금동대향로만은 사비 땅 밖으로 벗어나도록 할 수 없었다. 향로에 담긴 백제의 사상과 우주관이 시공을 떠나 한반도나 대륙의 한 쪽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이 백제인의 응축된 마지막 자존심이었고, 외세에 능멸당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장인은 백제의 마지막 순간을 예견했던 걸까? 침탈의 순간을 당해내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그는 향로에 주술을 걸 듯 상상의 동물들과 신선에게 새로운 세상을 위한 신화를 주문했는지도 모른다. 사라진다 해도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백제금동대향로는 검은 피가 되어 흐르던 긴 어둠을 깨우고 금빛 찬란하게 허허로운 백제 유적 사이로 날개를 활짝 펴고 불사조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 온 국민을 감격시켰다. 사라진 역사에서도 백제인들의 혼은 면면히 이어 오고 있어, 그들의 장쾌한 기상과 찬연한 문화가 우리의 붉은 피 속에 녹아 있으려니 생각하니 향로를 대할 때는 가슴 뭉클해 온다.
새로운 태평세대가 다가오려나, 한줄기 향불의 연기와 은은한 향기에 봉황의 날갯짓에 따라 다섯 악사들이 당장이라도 연주하고 기러기는 춤을 출 듯한데.
[창작산맥 2017 겨울호 게재]









공지   ★ 동문 사칭 사기행위 주의 경보 발령  사이버총무  2014-06-24 2653 0
공지   연락 안되는 동문 찾기!!!  사이버총무  2011-12-04 4148 0
공지   52회 홈페이지 글올리기 제한 조치 시행! [3]  사이버총무  2009-05-27 4505 0
공지   게시판에 글/사진 올리는 방법 [1]  재경총무  2004-04-22 5977 96
634    묵주  송대수 2020-04-20 90 0
633   성묘  송대수 2020-04-20 85 0
632   창경원 늑대  송대수 2019-04-01 179 0
631   52회 울 동창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황규동 2018-12-02 282 0
630   노모의 울음  송대수 2018-10-11 353 0
629   김우종교수 평설 <아!백제금동대향로>  송대수 2017-12-30 769 0
  아! 백제금동대향로  송대수 2017-10-20 916 0
627   라만차의 풍차  송대수 2016-12-29 1147 0
626   [재경사랑방] 운영비 모금을 위한 "자동차보험" 가입 협조 안내 [5]  사이버총무 2008-03-19 4691 0
625   손주를 안고 [3]  류기호 2007-10-26 4839 0
624   재경 가을 야유회(10/29, 전북 부안) 답사 사진  사이버총무 2016-10-20 1144 0
623   감사인사 드립니다  김왈수 2016-10-10 1026 0
622   107년 전 오늘..대한제국, 간도를 빼앗기다  권태영 2016-09-04 973 0
621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황인규 2016-06-13 1262 0
620   감사의 인사  박웅 2016-03-30 1342 0
619   삼가 감사인사드립니다  김진성 2015-11-22 1527 0

1 [2][3][4][5][6][7][8][9][10]..[32] [다음 10개]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zero

이전게시판 (2000.4~2004.1) 보기

이전 게시판(1999.11~2000.3)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