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수(2018-10-11 10:51:18, Hit : 352, Vote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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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모의 울음

노모의 울음

송대수


그때도 모두 모인 날이었다. 장인어른의 웃음소리가 호탕하셨고 장모님은 조용히 식구들의 시중을 들며 즐거워하셨다. 장인어른의 칠순에 슬하의 칠남매가 다함께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밤늦도록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음날 현관 앞 계단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얼마 후 장인은 암으로 병원에 입원하셨고, 나는 문병 차 병원에 찾아갈 때 그때 찍은 사진을 액자에 넣어 가져갔다. 장모님은 장인어른을 간병하신지 벌써 두 달 가까이 되었다. 당신이 수발하시겠다며 서울로 올라와 병원에서 숙식하며 잠시도 장인어른 곁을 떠나질 않았다. 쪽진 머리의 할머니가 온종일 환자 곁에서 다정하게 챙겨주는 모습이 젊은 사람 못지않았다. 그러나 행여 간병하다 몸이라도 상할까 안쓰럽기도 하고, 불효자식을 두었다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오해라도 받을까 은근히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가져간 사진을 드리자 장모님은 피로한 기색도 없이 바로 그날을 기억하며, 거친 손으로 사진 속의 얼굴들을 쓰다듬는다. 자손들이 모두 활짝 웃으며 즐거워하는 사진 속 자식들이 빠진 사람은 없는지 그들의 표정마다 형편도 이야기 하시며 함께 있는 듯 흐뭇해하신다. 초췌한 장인어른도 혼자만 좋아하지 말고 함께 보자며 가까스로 몸을 움직여 참견을 하신다. 병문안을 가기 전 장인어른의 병환으로 심란해 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담담하고 평화로운 표정이어서 놀랐다. 두 분의 다감한 모습을 보며 나는 오히려 안심하면서도 서글픔을 안게 되었다. 고개를 드니 병실에 길게 드리워진 햇빛이 사그라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언제 오시나’하며 처가 형제들이 산소 아래 소류지 공원에서 오리 모양으로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다. 아흔 여덟의 연세에 성치 않은 몸으로 걸음도 잘 걷지 못하셔서 성묘는 어렵다. 그래도 ‘금년이 마지막이 될지 모르니 산 아래만이라도 가겠다.’며 무리하여 오신 길이 몇 년 째다. 차 한 대가 보이면 모두 목을 빼고 쳐다보기를 몇 차례, 드디어 장모님이 지팡이를 앞세우고 가까스로 차에서 부축 받아 내리신다. 딸들과 사위들이 달려가 에워싸고는 뭐 하러 힘들게 오셨냐는 둥, 잘 오셨다는 둥, 산에 올라가도 끄떡없으시겠다는 둥 와글와글한다. 쉽지 않은 나들이에 모든 자식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 그런지 연신 반가워하며 미소가 함빡 담긴 표정이시다. 힘겨운 걸음으로 소류지 공원에 건너와 앉으신 장모님과 팔순을 바라보는 큰동서를 남겨둔 채 자식 내외들은 산소에 올라 성묘를 하고 내려 왔다.
매년 시월, 하늘이 열린 날을 정하여 온 가족이 성묘하는 날로 정하였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신 후부터 정하였으니 이십사오 년은 넘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날만은 참석하는 것이 가족의 불문율이다. 가족뿐만 아니라 친척들도 참석하는 해에는 삼십여 명이 넘기도 하였다. 오늘은 칠남매 내외가 모두 참석하고 장모님과 처당숙이 계시니 열여섯이다.
경치 좋은 소류지 옆 식당에 모여 앉으니 꽉 차는 것이 식구들의 풍요로운 모습이어서 좋다. 둘째 동서가 혼사를 잘 치러서 좋다고 하고, 처당숙 어른의 걸쭉한 입담에 웃음이 함빡 쏟아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장모님은 별 말씀이 없으신 채 묵묵히 계시니 덕담 한 마디 하시라고 작은 처남이 권한다. “이렇게 너희들을 빠짐없이 볼 수 있어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어, 그런데 너희 아버지가 나를 빨리 데려갔으면 좋겠어.” 이 말씀을 하시고, 허공만을 응시하신 채 미동도 안하신다. 자리엔 깊은 침묵이 깃들었다. 장모님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기에 옆자리의 맏처형이 손을 꼭 잡아드린다.
지금도 눈 밝고 귀 밝아 일견 건강해 보이시나, 근년에 들어 외로움이 노환의 몸속을 깊이 찌르듯 아파하신다. 같이 울고 웃던 동기간이나 친척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삶을 같이 나누어야 하는 자식도 옛날과는 삶이 달라 모두 바쁘니, 보고 싶을 때 쉽게 만날 수 없고 외로운 섬에 홀로 계신 듯 쓸쓸해하신다. 그래도 의연하게 버티시던 분이 근래에 감정기복이 일어나는지 자식들에게 서러운 감정을 표현할 때도 있다. 몸이 아프고 연세가 들수록 장모님은 돌아가신 장인어른을 더욱 그리워하신다. 동고동락하시며 쌓인 잔정에 흠뻑 빠지셨는지 찾아뵐 때마다 장인어른 이야기를 부쩍 하시며, 매일 장인어른에게 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면서 좋았던 일들만 기억하신다.
한때 암울했던 인권유린과 반민주의 개발독재시대에 큰처남은 민주화의 물꼬를 터야한다고 몇 차례의 수배와 투옥을 당하였고 작은 처남마저 그런 일로 고초를 겪고 있었다. 그즈음 농촌 부엌까지 들이닥친 형사들에게 받는 갖은 괴로움으로 옷고름 마를 날 없던 나날도 장모님은 장인어른이 계셨기에 ‘이런 일쯤이야!’하고 견디셨을 것이다. 장인어른과 함께 어둠 속의 깊은 숲과 수렁을 손을 맞잡고 건너오신 장모님이어서 그런지 애틋한 사부의 정이 한없이 묻어나온다.
식당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잘 꾸며진 정원으로 둘러싸인 건물 뒤로 소류지 물결이 햇빛에 반짝인다. 장모님은 지팡이에 겨우 몸을 의지하여 소류지 건너 산을 물끄러미 바라보신다. 산은 가을바람에도 아직 푸르렀다. 한 굽이 돌아가면 바로 그곳에 예전에 살던 집과 산소들이 있어서 그런지 꿈쩍도 안하신다.
모두들 장모님을 중심으로 둘러서니, 장모님은 흡족해 하신 것 같기도 하고, 서운하신 것 같기도 하였다. 각자 헤어지는 인사가 시작 되었다. 여기저기서 ‘어머니 건강하세요.’, ‘또 찾아뵙겠어요.’, ‘안녕히 가세요.’, ‘오래 사세요.’하고 인사를 하자, 아흔여덟의 장모님은 기어이 울컥하여 “으흐흥” 소리 내어 울음을 터트린다. (2016. 10. 06.)
-한국문학시대 2018 가을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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