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수(2019-04-01 11:09:01, Hit : 126, Vote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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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경원 늑대

창경원 늑대
/송대수

늑대를 봤다. 창경원 동물원에서 벚꽃놀이를 할 때였다. 벚꽃들이 작은 나비처럼 나풀거리며 늑대의 등과 얼굴과 콧등으로 내려앉았다. 눈과 코에 달라붙는 꽃잎들이 간지러운지 몸을 털다가 제자리에서 제 키 정도 팔짝 뛰어오를 땐 나는 깜짝 놀랐다. 찢어진 입과 송곳니를 드러내고 치솟았다 착지하는 야생의 본능적 위압감에 놀랐고, 개별적으로 상대하기 힘든 동물을 인간이 이렇게 철저하게 구속시킬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독일산 셰퍼드 크기쯤 되어 보이는 늑대가 갇혀있는 우리가 이동식 닭장 같아 좁고 불편해 보였다.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길게 내민 혀처럼 그의 몸이 우리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 이후 늑대를 직접 본 기억이 없다.

인간에게 늑대는 흔히 적대감과 공포감을 일으키는 동물로 알려져 있지만. 유럽에서 가문의 문장이나 군대의 휘장에 늑대를 사용한 것을 보면 용맹성이나 충성심을 갖춘 동물로 높이 평가하기도 하고, 또한 중앙아시아 초원이나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신으로 여기기도 하였고, 어떤 부족들은 마법을 부리는 존재로 인식하였다고도 한다. 이런 다양한 시각들은 인간들이 영민한 자연의 한 구성원이었던 늑대들과 같은 영역에서 마주칠 때마다 서로 맞서지 않고는 지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늑대는 인간과 많이 닮아 있다. 늑대는 무리를 지어 생활하며 짝을 맺으면 죽을 때까지 제 짝과 생활을 한다고 한다. 어미가 새끼를 낳으면 한동안 사냥도 나가지 않고 새끼를 키우는데 전념을 하도록 하고, 새끼의 어미가 없을 경우에는 무리에서 공동으로 새끼를 돌본다고 한다. 무리를 이끄는 대장늑대가 있어 철저하게 무리를 책임지고 통솔하면서 다른 늑대들도 그의 지위를 인정하고 서열을 지키며 따른다고 한다. 각각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책임감과 충성심, 협동심을 가지고 서로를 배려할 줄 아는 동물들로서는 흔치 않은 집단사회를 이루고 사는 영리한 동물이다.
인간이 대하의 흐름처럼 늘어나면서 원래 그 땅에 존재하던 동물들의 영역을 잠식해 들어가자, 그들 사이에 피할 수 없는 영역싸움이 시작되었다. 희생양들이 생겼다. 늑대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행위를 했을 뿐이었겠지만 인간은 커다란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는 늑대는 지나치게 영리하고 교활하여 끊임없이 인간들을 괴롭히는 나쁜 동물로 인간들은 영민한 늑대를 악마라고 여기게까지 되었다. 인간들은 동물들이 갖지 못한 무기의 위력으로 그들의 영역 속으로 깊숙이 침투하여 그들을 박멸해 나갔다. 초원에 살던 늑대는 깊은 산중으로 밀려나고 쫓겨나 구슬픈 울부짖음만 남긴 채 사람들 시야에서 사라져 갔고, 일부의 늑대들은 사람들 손에 붙잡혀 동물원 우리 속에 갇혀 버렸다.
동물을 자신의 영역에서 쫓아낸 인간은 동물과의 사냥이나 영역 싸움에서만 치열했던 것은 아니다. 인간끼리의 영역 싸움도 골몰하여 늑대와 싸우 듯 자신에게 도전하는 자는 가차 없이 해치우려는 심리가 있는 듯하다. 자신을 떠받들지 않고 뜻이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면 그들과 결전을 벌이고, 계급을 정하고, 자신의 발아래 두려 한다. 그래서 위세로 상대방을 두려움에 떨게 하여 길들이려 한다. 힘을 다투는 권력의 영역에서는 개인 간, 세력 간, 당파 간, 나라 간의 심한 충돌이 발생하거나 내부의 반란까지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목도할 수 있다. 인간들끼리의 다툼에서는 적을 알아내는 것이 어렵다. 언제든 어디서든 ‘양의 탈을 쓴 늑대’가 두렵다. 개인의 무제한의 탐욕이 배신을 낳는 일들을 수없이 겪었기 때문에 인간들끼리는 늘 불안해한다. 흡족하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영역에 인간은 나름의 성을 쌓게 되는 것이다. 선을 긋고 방책을 세우고 심지어는 토담도 아닌 거대한 석조물로 벽을 쌓고도 모자라 해자까지 설치하면서 일말의 불안감을 해소하려 한다. 자연 속에서의 늑대는 사라졌어도 인간늑대와의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구한말 외세가 밀려들어오는 와중에 우리 조정은 서로 자신들의 이익에 맞는 외세를 등에 업고 우왕좌왕 권력다툼에 골몰하였다. 관료들의 탐욕과 부패가 백성들에 대한 핍박으로 가중되자 이에 참지 못한 동학은 부패척결, 내정개혁 등을 내세우며 일어서기 시작하였다. 동학농민혁명을 통해 조정에 ‘백성을 편안히 하고, 외세를 몰아낼 것 등’ 간절하게 요구하며 무장 시위를 벌이게 되었다. 그러나 무력한 조정은 무자비한 일본의 힘을 빌려 희생양으로 수많은 농민군을 살해하고 진압하였다. 종국에는 외세에게 잡아먹힐 것을 뻔히 알면서도 조정의 대신들과 양반들은 힘센 강대국에 안주하려는 비열한 수단을 사용한 또 다른 늑대 같은 인간이었던 것이다. 결국 조선왕조가 마지막으로 쇄신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그 결과 이빨을 숨기고 발톱을 감춘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는 운명이 되었다. 일본은 을사늑약 등으로 우울한 순종의 기분을 위로하겠다는 명목으로 1909년 창경궁 안의 전각들을 부수어 동물원을 설치하고 유원지를 만들도록 하였다. 독립국가로서 500여 년 이어져 내려온 조선왕조의 궁궐인 창경궁은 사라지고 창경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거창한 이름의 대한제국의 왕은 국권을 박탈당하고 동물원 우리 속에 갇힌 늑대처럼 힘없는 존재로 전락했던 것이다.

유신정권 이후 민청학련 등 일련의 사건들로 사회가 급속도로 뒤숭숭하던 1970년대 대학시절, 벚꽃 흩날리던 창경원의 그 늑대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왜 갑자기 떠올랐을까? 작금의 한반도 주변 정세가 그 당시의 상황과 비슷해서일까? 그 당시 묘한 잔상이 지워지지 않는다.

(한국문학시대 2017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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