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용(2009-09-03 14:43:45, Hit : 4853, Vote : 0) 
 우리들의 파랑새를 ‘위하여’ -화려함 뒤 보아야 할 어제의 긴 무명


이 글은 대전예총 기관지 <대전예술>2009년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97년 봄 어느 날.
밤이 깊어 가면서 500여평의 넓은 홀은 16인조 악단과 현란한 조명, 합창단, 그리고 무용단의 요란스런 댄싱과 함께 꽉 찬 손님들로 붐빈다. 무대에서는 “가요계40년, 원로가수 ‘돌팔매’의 주인공 오은주를 소개합니다"라고  사회자인 필자가 멘트를 한다.

‘원로가수’란 말에 호기심으로 가득했지만 실상은  앳띤, 그리고 자그마한 여성이 고고히 등장한다. 오은주는 실제 40대 초반의 나이었다. 그러나 ‘원로가수’가 전혀 틀리는 말은 아니다. 사십년 전 그녀나이 다섯 살 때 이미 ‘아빠는 마도로스’라는 노래로 명성(?)을 얻었다. 가요계 경력으로 치면 거의 40년이 되는 셈이다. 어쨌든 그 말이 손님들의 호기심을 불러오고 ‘빙그레’웃게 만들었다.  

오은주가 공연하는 동안 대기실은 가수 최진희, 탤런트 박영규, 임채무 등이 족발과 소주 한잔으로 자기 출연순서를 기다렸다. 잠시 후 탤런트 김영배(남자답게 사는 법, ‘서울의 달’에서 춤선생역할)가 합류하였다. 전북정읍출신하며 허허실실한 성격의 그는 유난히 정이 가는 후배였다. 다른 업소를 돌고 온 모양이었다.

“형님, 혹시 차력사들 사무실 좀 소개해 주실 수 없어요?”
“야, 우리업소 1부 쇼에 대한민국 최고의 차력사들이 출연하잖아”
“그래요?”

김영배는 그 사실을 모를 수 밖에 없었다. 출연시간이 달랐기 때문이다.

필자가 사회를 봤던 그 나이트 클럽에 1부 쇼는 대부분 무명연예인들로 채워졌다. 사실 아주 소수를 제외하고는 그 과정을 거쳐야 연예인으로 성장하던 시대였다. 무명의 설움은 이 업소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칠판에 조차 출연자 명단을 적어놓지도 않을 정도였다. 1부 쇼는 손님이 없는 시간이라 무대가 썰렁하지 않게 짜맞춘 구색용에 불과했다. 출연 기회를 주는 업소에 오히려 고마워해야하는 게 무명연예인의 입장이었다.  

10여 년 전 필자가 활동했던 밤 업소의 풍경을 그린 이유는 따로 있다. 이 업소가 바로 KBS-2TV창사특집 ‘파랑새는 있다’의 실제 무대였기 때문이다. 샹글리아 나이트 클럽의 극 중 사회자 한진희가 바로 필자였고 차력사로 나오는 이상인, 김영배 등의 역할이 바로 거기에서 얻은 배역이었다.

그날 밤, 김영배가 나에게 질문한 “형님! 차력사 사무실 소개해달라”는 말이 드라마 제작의 단초가 되었다. 그날 이후 작가와 PD가 야간에는 현장에 상주하면서 밤무대의 적나라한 스케치와 함께 차력사들의 애환, 자신의 신분 상승을 위해 몸부림치며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탈바꿈하려는 전직창녀 ‘봉미(정선경분)의 일상 생활 등을 그려내는 서민들의 적나라한 모습이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파랑새‘를 잡으려 했고 그걸 위해 모든 걸 투자했다. 소박하고 착하기 그지 없는 우리들의 일상모습이었다.  

필자도 고향 대전을 떠나 거칠기만한 서울생활에서 연예계 생활을 20여 년간 했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충청도 출신 무명 연예인에게 나름대로 정을 더 많이 쏟았다. 객지생활에서 고독함과 경쟁을 의식하다보니 당시 가수 현숙과 박일준의 무명시절부터 뒷바라지를 해주던 고교 동문인 <오뚝이 인생>의 김상범 선배와 역시 고교 동문인 <송대관 끈끈한 정 때문에>작곡가 겸 연주인인 정주희 선배를 우리 업소에 악단장과 가수로 장기간 출연토록 하였다.

그것이 가능했던 건 필자가 그 업소에 사회자이면서 연예 상무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고향 선후배들을 더 출연시킬 수 있었고 사회를 보면서 애드립으로 살짝 띄워 주기도 했다. 그 때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오지만 그 과정을 겪고, 브라운관을 통하여 오늘날 대스타로 우뚝 선 연예인들을 보면 내심 가슴뿌듯함도 느낀다.    

사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결과, 즉 성공한 연예인의 외적인 화려함만 보고 부러워하며 동경을 하지만 그들에게도 지난날의 세월은 한없이 혹독한 인고의 과정이었으리라 생각한다.  필자는 밤 업소에서, 그것도 현장에서 사회를 보았기에 너무나 익히 잘 알고 있다. 지나치리만큼 엄격했던 위계질서, 사람 취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무명들의 설움, 쥐꼬리만한 개런티 등등...

하지만 그들에겐 놓을 수 없는 꿈이 있었다. ‘파랑새’를 잡아야한다는 바로 성공에 대한 집착과 노력이다. 그걸 소중하게 가꾸어 온 연예인은 오늘날 ‘무명’에서 ‘유명’ 연예인으로 탈바꿈 했다. 파랑새에 대한 집념과 끊임없는 노력이 대형 스타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진정한 의미를 느끼듯 무명의 그늘을 생각하지 않으면 성공의 화려함은 절대로 오지 않는다. 그 모델 케이스가 가수 배일호가 아닌가 생각한다.
충남논산출신 ‘신토불이’ 가수 배일호는 90년대 초반 우리 농산물장려운동이 한창일때 ‘신토불이’ 노래가 큰 호응을 얻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후속타로 ‘99.9’, ‘장모님’ 등이 대중에 알려지며, 단번에 그 동안의 힘든 무명생활을 ‘파랑새’로 반전시켰다. 이제 그는 선후배 사이에서 훌륭한 멘토 역할도 하고 고향을 위하여 뜻있는 봉사도 하는 모범 연예인이 되었다.

대장간의 연장도 수십번의 풀무질과 담금질을 거듭하여 명품이 나오듯 우리네 인생도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연속과 자신과의 극기(克己)에서 훌륭한 인격체가 이루어지리라 생각한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너무 쉽게 인기를 차지하고 내공과 컨텐츠의 부족으로 쉽게 사라지는 젊은 연예인들을 볼 때, 그 시절의 고난과 역경이 오히려 필요한 과정이 아닐까라는 아쉬움도 있다.

필자 역시도 그러한 과정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고 느껴왔기에 내 인생의 소중한 자산으로 여기며 나이와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세태가 아무리 변화무쌍할지라도 매순간 최선을 다하며 내일의 희망을 향해 달리고 있다.

밤무대의 무명 연예인이여!
그리고 경제 위기 속의 낙망에 놓여 있는 국민들이여!
우리들의 ‘파랑새’를 위하여 점프, 점프, 점프합시다.

유 하 용 (파랑새기획대표, 혜천대 이벤트연출과 겸임 교수)






이원건 (2009-09-04 10:04:11)  
기타만 잘 치는줄 알았는데
누구보다도 다양한 인생을 겪은 너
재미있는 내용의 글
잘 읽었고
추억이 떠 오르는구나
좋은 글 감사.


440   이대복(2반, 인천공항세관장), 첫 세관역사서 펴내 [1]  사이버총무 2009-09-05 4563 0
439   "학사주점 청자를 아십니까"의 후일담 [1]  유하용 2009-09-03 5814 0
  우리들의 파랑새를 ‘위하여’ -화려함 뒤 보아야 할 어제의 긴 무명 [1]  유하용 2009-09-03 4853 0
437   어머님을 보내드리며  이원교 2009-08-08 4214 0
436   학사주점 '청자'아시는 분, "한 번 모입시다"  유하용 2009-07-24 4863 0
435   학사주점 ‘청자’를 아시나요  유하용 2009-07-08 4592 0
434   대공개! -사랑방 수기 통장 [1]  김 훈 2009-07-06 4629 0
433   "한벗" 동생을 찾아냈다 [2]  김 훈 2009-06-25 4602 0
432   2박3일 (1부)-그 황홀한 첫날밤 [5]  김 훈 2009-06-20 5929 0
431   혼사축하에 대한 감사말씀 (최태문)  최태문 2009-06-18 4525 0
430   ‘가요무대의 소고’  유하용 2009-06-16 4581 0
429   그 때 그 시절 (한벗 제3호) [2]  사이버총무 2009-06-08 5101 0
428   그 때 그 시절 (한벗 제2호) [3]  사이버총무 2009-06-08 4932 0
427   그 때 그 시절 (한벗 창간호) [2]  사이버총무 2009-06-08 5200 0
426   누가 南八兒를 아시나요? [2]  김 훈 2009-05-21 5087 0
425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보고 [1]  김 훈 2009-05-13 4979 0
424   모친상을 위로해 주신 동기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송기태 (8반) 2009-05-11 4171 0
423   스페인 독감-조선에서 13만 9천명-스코필드박사 헌신적 연구!  한준구 2009-05-05 4239 0
422   윤봉길-백범-곽태영-안두희 -77주년 기념일 등!-친일세력 척결등!  한준구 2009-04-29 4445 0
421   사랑방운영비 3 [2]  김광락 2009-04-29 4137 0

[이전 10개] [1].. 11 [12][13][14][15][16][17][18][19][20]..[32] [다음 10개]
 

Copyright 1999-2026 Zeroboard / skin by zero

이전게시판 (2000.4~2004.1) 보기

이전 게시판(1999.11~2000.3)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