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세의 전화가 왔다.
가끔 얼굴을 보지만 그래도 반갑다.
"너 15일 약속 있냐?"
항상 성당때문에 주일은 바쁜 몸이라는 걸 알면서도 묻는다.
"성지순례 어쩌고..."
대답을 듣는둥 마는둥 "이번 주말에 제주도 올레길 같이가자"
아니 갈거면 이미 3개월 전에 예약했지 지금껏 않했을라고...
대답하려는데 말을 끊으며 "(박)태호가 예약했는데 급한 일 때문에 못가게 되어 대타를 구하는 중이야.
다들 네가 적임이라 해서 전화했다."
이 정도면 성당일이고 뭐고 주님께서 용서해 주시겠지.
문제는 아파트 업무상 근무하는 토요일이라 동대표 회장과 담판해야 한다.
동대표도 허락하여 태호 대신 참가하기로 했다.
공항철도로 나와 김포공항 국내선에 들어서니 이미 거의 다 도착해 있다.
내 뒤를 이어 (박)노현이 들어와 1진으로 떠날 전원이 다 모였다.
출발은 8시 15분이란다.
티켓을 끊고 선착순으로 비행기(진 에어)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은지 약 1시간 만에 제주에 도착했다.
복잡한 제주 공항에서 출발시 발송한 짐(등산용 스틱)을 기다리는데 발송되지 않았단다.
그동안 시간이 지나 10시 가까이 되어서야 짐을 포기하고 다시 모였다.
오늘 한라산 등정은 포기다. 최소한 10시 30분 까지 진달래 휴게소에 도착해야 등산할 수 있단다.
나야 출발부터 등산은 포기한 몸이니 올레길이나 다니고 저녁에 술 한잔이면 족하지 뭐 있나?
짐이 오든 말든, 한라산에 오늘 오르든 내일 오르든 일단 허기나 면했으면 좋겠다.
예약된 버스에 오르니 자리가 넓어 2인 좌석을 한사람씩 앉았다. 그리고 같은 일행이 된 여자 4명도...
운전기사(숲향 트래킹 직원)가 오메기떡(수수를 갈아 익힌 후 팥고물 묻힌 떡)을 소개하고 먹으란다..
(이)원건이가 "야 지금부터 대장 말 잘 들어!" 하며 대장을 자처하고 나왔다.
대장의 첫째 임무는 오메기떡 나눠주는 것이다.
잘 먹겠습니다.
도착이 늦어 오늘과 내일의 일정이 바뀌었다.
서귀포 어느 귀퉁이에 내려준 곳은 공항을 떠난지 약 1시간 경과한 때이다.
여기부터 올레길 8코스가 시작된단다.
버스는 중문 휴게소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해변으로 접어든 길을 가다보니 저 멀리 해변에 깎아지른 절벽이 보인다.
저 정도면 거의 신의 한 작품으로 손색이 없을것 같다.
이름이 주상절리라고 한단다.
일단 핸폰으로 한장 찰칵! 이어 전원이 모여 다시 찰칵!
계속 걷다보니 이번엔 시크릿 가든 촬영지가 나타난다.
오늘 결혼식이 있는가 보다. 웨딩드레스의 신부가 부축을 받으며 나오고 우린 박수치고...
언놈인지 좋겠다. 근데 사회자가 한국말과 중국말을 번갈아 사용하는 것을 보니 중국인인가?
임시 결혼식장을 빠져나오니 큰 길을 건너가야 한다.
다리 하나만 건너면 점심식사 장소로 태우고 갈 버스가 기다리는데 옆길로 올라가란다.
싫으면 곧장 다리 건너고...
가 봐야 한시간정도 기다려야 하는데 옆길로 새 보지 뭐.
이름이 베릿내 오름이란다. 올레길에 이런 오르막좀 없었으면 좋겠다.
그냥 걸어도 차만 타던 놈은 힘든데, 그래서 청계산도 산행은 그만두고 뒤풀이 장소에나 시간맞춰
찾아가던 놈인데...
속으로 투덜대며 길을 따라가니 역시 올라가길 잘했다 싶더니만 계속 올라가는 길과 옆으로 가는
두갈래길이 나온다.
한팀은 올라가는 길로, 나는 옆길로 가는 팀에 합류하여 잠깐 걸으니 이상한 광장이 나오고 길이 없다.
산 꿩이 지나가는데 크기가 칠면조만하다.
뒤돌아 가려는데 위로 올라간 팀이 한바퀴 돌아 옆길로 들어선다.
그냥 위에서 한바퀴 돌게 되어있는 길이었다.
이상한 광장(밭)을 지나 계속 가다보니 이번엔 천재사가 나온다.
또 천제연 폭포가 근처에 있는데 입장료를 받는단다. 전화로 물어보니 입장료는 다른 곳에서
판다는데 한국사람이면서 제주말은 참 어렵다는 생각이다.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어 폭포 가는것은 포기다.
이제 밥먹으러 가자...
옥돔 정식은 원래 내일 먹기로 했는데 일정이 바뀌어 지금 먹으러 간다.
그리고 이름에서 기대한 대로의 음식이 아닌 정말 시장하지 않으면 먹기 어려운 식사가 나왔다.
에이! 입만 베렸네, 소주나 한잔 하면 좀 낫겠지...
식당이 제주에 있으면서 웬 송도식당?
다시는 찾지 않으리(기회나 있을련가 모르겠다)
다시 중문 휴게소에서 대포포구를 보며 중문 해수욕장 모래길로 들어선다.
마눌님이 전화로 인천은 우박을 포함한 큰 비가 내렸다는데 여기는 비키니 차림으로 일광욕을 하는
외국 여자가 있다. 눈은 나쁘면서 그런 건 왜 잘 보이지?
해수욕장을 지나 하얏트 호텔 옆길로 나온다.
계속가야 가장 아름답다는 해병대길로 접어드는데 통행이 금지됬단다.
이제는 아스팔트 도로로 접어들었다.
아스팔트로 올레길 다녀오려 제주까지 왔나하는 회의가 생길 무렵 馬苑이란 식당이 보인다.
얼마나 말이 怨恨(?)을 가지고 있으면 이름이 馬苑(?)일까?
식당 안에 큼직한 나무로 된 馬根이 보인다. 신기해서 (이)정환이더라 한장 찰칵!!
조금 더 걸어가니 아니 여긴 아까 밥먹은데잖아?
한시간 이상 걸어온 곳이 바로 식당 옆이라니...
모두 딴 곳으로 가자고 합의하여 송악산으로 가기로 했다.
같이 걷던 여자 4명은 차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쉬고 있어 버스가 오는 데 별 문제는 없었지만
(홍)성표와 (박)상인이가 보이지 않는다.
대장(이)원건이가 전화하니 상인이는 핸폰이 꺼져있고 성표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나도 성표에게 전화 했지만 받지 않는다.
떼어놓고 우리끼리 송악산으로 갔다.
송악산은 완만해 보이는데 위에 분화구가 있단다.
바로 옆 바다엔 멀리 형제섬이 보인다.
그냥 오르고 또 오르니 송악 분화구다. 한장 찰칵!
그리고 그 주변은 그 유명한 송악 억새밭이다.
또 저 멀리 목장에선 말을 키우고 있다.
내려오니 드디어 (고)길석 회장이 왔다.
이제는 저녁 먹으러 가려는데 (고)장식이 한마디 한다.
"내일 산행에 절대로 10명이 되지 않는다. 내가 장담한다."
글쎄 대충 봐도 10명은 넘을 것 같은데...
"아 10명 이상이면 내 다리 짤라!"
성표 일행을 찾기위해 다시한번 중문 휴게소 근처로 지나며 기사와 성표가 열심히 통화 하더니 드디어
합류에 성공 하였다.
가지 말라던 해병대길로 들어가 제대로된 올레길을 다녀 왔대나 뭐래나...
그런데 그 길이 가장 아름답단다. 나도 탈선한번 해 볼껄...
(김)덕록이 한마디 한다.
"(이)두영이 너는 내가 꼭 한라산 정상에 데려가께"
무궁화 4개짜리 삼해인 호텔에 여장을 풀고 기사가 소개하는 식당으로 이동했다.
호텔엔 공항에서 잃어버린 등산용 스틱이 와 있다.
한치 물회와 자리 물회, 옥돔구이, 고등어찜으로 된 저녁과 소주, 막걸리가 들어온다.
이상한 건 내가 술이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피곤한 게 빨리 자고싶다.
그리고 내가 언제 다시 여길 오게될까 생각해 봤다.
아마 지금 아니면 내 평생 제주도에 오더라도 한라산엔 오르지 못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내일 올라가야지...
(황)인규 전화 벨소리에 잠이 깼다.
새벽 1시 30분이다.
덕록이가 (고)장식이와 함께 술을 먹다가 일행과 헤어진 모양이다.
장식인 산행인구 10명이 되지 않도록 술로 방해공작중이다.
그 첫번째 대상이 덕록이다.
드디어 한명 탈락이 확정되는 순간이다.
호텔 이름을 가르쳐 주고 약 40분 후 이번엔 초인종이 울린다.
슬냄새와 함께 덕록이 들어온다.
잰 술을 너무 좋아해...
7시 반에 관음사로 출발 한다니 모두 7시까지 식당에 가야한다.
6시부터 4명이 차례로 화장실에 들어가 씻고 싸고...
우리는 불청객 덕록이까지 5명이다.
배낭을 꾸려 물과 귤을 챙겼다.
그리고 식당에서 밥을 잘 먹고 토스트도 4쪽 먹고...
오전중엔 절대 배고프진 않겠지...
진성이에게 빌린등산용 스틱을 챙기는데 진성이도 산에 가겠단다.
어제까진 절대 안간다더니...
관음사에 도착하니 진성이가 스틱을 돌려준다.
4시간 산행은 자신 없다면서...
학범이의 의견대로 가볍게 준비운동을 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약 30분쯤 지났는데 뒤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야호소리와 고성 방가...
요즘은 산짐승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못하게 하는데...
중간에 그 일행을 만나 한마디 해 줬다. 우리도 스트레스 받는다고.
덕분에 그 다음부턴 조용히 올라갔다.
아무것도 안보인다.
그저 땅만보고 걷는다. 다리에 힘이 다 빠질때 쯤 삼각봉 휴게소가 나타난다.
가끔 보이는 무인 포스트엔 관음사-12, 등의 표지와 삼각봉 휴게소 까지의 거리가 있어 희망을 가지고
산행을 할 수 있게 해 주어 고맙다.
삼각봉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귤 까먹고 사진 찍고 귤과 오이좀 얻어먹고(오이는 여자일행이 가져왔다)
이젠 용진각 대피소로 향한다.
길이 너무 험하다.
숨이 차오르고,땀은 비오듯 하고, 다리는 무겁고, 목마르니 물 한잔...
용진각 대피소를 지나면서 백록담이 구름에 가려진 것을 본 이후 하늘을 본 적이 없다.
아니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 정신이 아니다.
그저 걷고 걷고 또 걸으면서 한발 한발 나갈 뿐이다.
내려오는 등산객이 그저 부럽기만 하다.
안녕하세요? 인사는 나누지만 실제는 말할 기운도 없다.
(박)상인과 나란히 걷기 시작한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조금 전엔 (이)정환이었는데...
한참 가다보니 해발 1700이라고 쓰인 돌비석이 보인다.
아직도 250미터를 더 가야한다.
어느새 정환이는 사진찍는데 열을 올린다만 난 눈에 뵈는게 없다.
위에서 여자 일행이 내려오며 나를 보더니 "혼도니"하고 지나간다.
왜 쓰는건 日本人으로 쓰고 일본놈으로 읽어지지?
여자도 마찬기지다. 그저 기분나쁜 일본x일 뿐인건 나만 그런가????
"5분만 가시면 정상입니다"
내려오던 어느 父子가 해준 말인데 그사람 시계 5분은 내시계 15분도 더되나?
왜 아직도 정상이 멀리 있는거야?
상인이가 맥주캔을 권한다.
도중에 식사하던 일행한테 얻었다면서...
한모금 마시니 생명수가 따로 없다.
정신이 번쩍나며 보이지 않던 정상이 바로 눈 앞에 보인다.
드디어 내가, 청계산도 올라가기 싫어 뒷풀이 장소에만 가던 내가 백록담을 눈 아래 두고 있다.
관음사를 출발한지 4시간 30분 만에 정상에 올랐다.
(황?백?)인규가 "이두영이 장한일 했어." 축하해 준다.
고회장이 먹을거 없느냐고 보챈다. 아침 식사가 부실했나보다.
정환이가 어제 받은 오메기떡을 주니 맛있게 잘 먹는다.
인규가 가져온 프랑카드를 걸고 사진 한장 찰칵!
그리고 천지에서 떠온 물을 인규와 상인(?)이가 뿌리는데 바람이 너무 거세다.
정환이 카메라로 물이 튄다. 어찌 되었건 합수가 이루어 지겠지.
(백록담 안으로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덕록이가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사탄(장식)의 꼬임에 넘어가 오지 못했다.
배급받은 차가운 도시락으로 점심을 곱은손으로 먹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길은 초입이 너무 험하다.
그래도 올라올 때 보다 훨씬 가볍다.
정환이가 무릎 조심하라 일러준다.
내 체중이 무릎에 전달되어 튼튼한 무릎이 아니면 탈나기 쉽다는데 벌써 조짐이 온다.
진달래 휴게소까지 오는데 약 1시간 걸렸다.
주변을 볼 여유는 생겼는데 주변은 볼 게 없다.
아까 관음사 길은 경치가 좋았던것 같은데...
원래 반대로 산행을 해야 한단다.
그래야 내려가며 아름다운 경치를 볼수 있다는데 지금은 볼 게 없다.
고 회장이 양갱을 하나 건네준다.
아까 산각봉 휴게소에서 준 귤에 대한 보답이라나 뭐라나...
차가운 점심을 먹은 뒤라 맛있게 잘 먹었다.
내 뒤로 아무도 없다.
일행이던 여자들도 모두 먼저 내려갔다.
조금 전까지 고회장과 성표가 여자들과 함께 있었는데 나만 남겨두고 먼저 갔다.
무릎에 충격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내일 고생좀 하겠는데...
산엔 온통 바위 뿐이다.
가끔 나무로 덮어놓은 구간이 있지반 대부분 돌과 바위 뿐이다.
(오)광세는 (이)재설과 사라오름까지 다녀온다고 백록담에서 사진도 안찍고 먼저 갔다는데 나는
아직도 한시간은 더 가야할 것 같다.
벌써 3시 40분이 넘었다.
4시까지 성판악에 오라 했는데
다시 눈 앞에 뵈는게 없어졌다.
걷는 속도도 점차 느려진다.
오른발을 디디기가 점차 부담이 되려는데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성판악 휴게소에 도착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도착했고 바로 앞이 (오)홍진이다.
전혀 산에 갈 것 같지 않은 체구에 엊저녁 2시까지 술마신 사람보다도 늦게 도착했지만 별로
창피하지 않다. 오히려 뿌듯하다.
내가 백록담에 오르다니...
저녁 식사 전에 특산물 판매장에 들른단다.
이젠 장식이의 다리 자르는 일만 남았다.
"야 작두가 필요하지 않을까?" (모)상길이 말대로 작두가 필요할 것 같다.
장식이는 나름대로 나와 홍진이를 산행 인원에서 제외했단다.
또 엊저녁 성표를 비롯한 술 먹인 친구들 중 배신자가 나오리라는 생각을 못했단다.
어찌 되었건 우리가 모두 백두에 다녀온 건 아니지만 한라에는 함께 할 수 있어서 좋다.
시작(백두산)은 5명이 하였지만 그 끝(한라산)은 12명이 함께한 의미있는 하루였다.
특히 이제부터 우리 52회의 고생은 끝내고 앞으로는 좋은 일만 생기도록기원하며 이번 여행을
정리해 가고 있다.
"회장님께서 함께한 모든 친구들에게 선물로 귤 한상자씩 드리니 모두 감사히 받도록 하며 물건
고를 때 귤은 사지 말도록"
자칭 대장인 원건이의 말에 모두 박수를 치며 고회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역시 회장이 되니 통도 커지는 것 같다.(전에도 통이 컸지만...)
일행이 된 여자 4명도 덩달아 귤 한상자씩 받았다.
그리고 공항 근처 식당에서 제주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한다.
"야 두영이 네가 술을 마다하니 이게 웬일이냐?" (김)영화의 말 대로 술이 들어가지 않는다.
너무 힘들면 술도 못먹나보다.
이제는 12월 17일(?) 망년회에서나 볼 수 있는 친구들과 함께 비행기에 오른다.
나에겐 너무 고맙고 하기 어려운 경험을 하게한 이번 여행은 또다른 충격이다.
고마운 여행과 함께 고회장이 이번 여행길을 소개하란 명령(?)에 따라 나름대로 정리한다.
집 문을 나서면 한라까지 연결 되는데 너무 갇혀서만 지내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여유는 만들어야지 생기도록 기다리면 평생 오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한번 생각하며
태호야! 고맙다. 훈이 말대로 한잔 쏠께...
장식아 네 다리는 쫌 더 있다 잘라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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