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바다앞에 서면 늘 가슴이 뛴다.
어려서부터 미지에 대한 동경과 까닭모를 향수에 가슴저리곤 했다.

저녁놀이 탄다.
붉은 빛으로 하늘과 바다가 온통 물들었다. 황금빛 새털구름이 눈부시다.
멀리 수평선 마루 너머 돛단배 실루엣이 저으기 한가롭다.       

어스름한 어둠이 깃든 편안함에서일까 그녀 무릎을 당겨 베고 누웠다.
별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사랑하는 사이에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저 곁에 있음이 행복인데.

멀리서 은은한 노래 소리가 적막을 가른다. 끊길듯 말듯 바닷바람에 실려 애처로이 퍼진다.
'달아달아  밝은 달아 ~♬ 이태백이 놀던 달아 ~♪'

퍼뜩 상념에서 깬 내가 말했다.
"영화야, 저 노래소리 들리지? 저기 말하는 달이 저 달인 줄 아니?" 하고는 잔솔가에 걸린 달을 가리켰다. 
이제 갓 나온 달은 푸르름에 감싸있다. 상큼한 비누 내음이 풍기는 듯하다.
 
"그럼 틀리단 말인가요?"
"응. 거기에는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애틋한 전설이 있어."
"어떤?" 

눈을 반짝이며 내려다 본다.
어느 시인이 그랬지. 경포대에는 달이 다섯개가 뜬다든가. 그 중 제일은 님의 눈속에 있는 달이리라.
이렇게 초롱한 눈망울 속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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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숙종 때 평양에 달(澾)이라는 기녀가 있었다.
그녀는 달덩이같은 얼굴과 요염한 자태, 서화 및 기예가 황진이 못지않았다.

어느날 중국에 동지사로 가는 사신이 이 곳을 지나다가 소문을 듣고 찾아와 하룻밤을 지새우게 되었다.
그는 달의 아름다움과 기교에 취해 세월가는 줄 모르고 물경 한달이라는 시간을 머물렀다.
어느날 퍼뜩 사명을 깨달은 그는 서둘러 북경으로 떠날 채비를 하였다. 
  
이윽고 달을 불러 이르길,
"내 북경에서 급히 일을 봐야 하느니라. 귀경길에 다시 와서 널 한양으로 꼭 데려가마."
"가지 마시와요."
"아니, 국운에 관계된 일이다. 늦어도 연말까지는 돌아오마."
"그러시다면 얼른 돌아오세요. 그리고 이 정표를 갖고 가세요."
하고는 옥비녀를 뽑아 건네주었다.

그는 떨어지지않는 발걸음을 돌려 북경에 도착하여 성공적으로 사신으로서의 임무를 끝냈다.
귀국길에 불행히 마적에게 첩자라는 누명으로 붙잡히게되어 갖은 고초를 겪게 되었다.

해가 바뀌어 누명이 벗겨져 풀려나 서둘러 평양에 도착하니 어느 덧 정월 대보름.
명절 분위기로 온 동네가 훈훈하다.

나는 걸음으로 달의 집 싸리문을 들어서매 그녀 어미가 통곡을 하며 그를 맞는다.
연유를 물으니 풍문에 그가 죽은줄 알고 식음을 전폐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얼마전 죽었다는 얘기였다.
 
그가 묘소를 찾아 통곡하며 가로대,

"다라달아(多拏 澾娥)" ==> (多:많을다, 拏:붙잡을라, 澾:미끄러울달, 娥:예쁠아:: 많이 붙잡던 예쁜 달아)
        < 가지말라고 애원하며 붙잡던 우리 예쁜 달아 >    
"발근달아(發根 達兒)" ==> (發; 쏠발, 根:뿌리근, 達:통할달, 兒:아이아:: 물건을 세우는데 통달한 아이야)
        < 그대 앞에만 서면 날 크게 만드는도다. >
"이태배기(梨態 徘技)" ==>  (梨:배꽃이, 態:태도태, 徘:노닐배, 技:재주기:: 배꽃 자태와 노니는 기교로써)
        < 배꽃같은 용모와 몸녹이는 솜씨를 두루 갖추어 >
"노돈달아(路沌 澾兒)" ==>  (路:길노, 沌:어두울돈:: 갈길을 어둡게 만들던 달아)
        < 떠나던 마음을 어둡게 하던 우리 달아. >

그리고는 사흘 밤낮을 떠나지 않고 울다가 묘지위에서 죽게되었다.
 
이를 기려 사람들이 세운 추모비는 평양 을밀대 옆에 아직도 있어, 애절한 사랑을 일깨우며
후세 연인들의 옷깃을 여미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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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커트를 통해 따뜻한 체온이 전해 왔다. 햇솜처럼 포근한 달빛이 온몸을 감싼다.
달빛에 취해선지 나른함이 밀려왔다.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풀벌레 소리에 얼핏 깨니 배위에 마후라가 덮혀있다.
 
영화가 혼자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저달속에 ♪  계수나무 박혔으니 ♬'

"계수나무가 무슨 뜻인줄 아니?  그 관리가 죽은 자리에 나무가 자랐거든.   
 후세 사람들이 그들을 애도해 기애수(紀愛樹:사랑을 기리는 나무, 紀:벼리기, 愛:사랑애, 樹:나무수) 나무라 불렀지."

말을 마치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한숨이 가느다랗게 느껴진다.
 
달은 이미 저만큼 흘러 은하수를 지나고 있다.
언뜻 영화 눈속의 달이 물기를 머금었다. 그 달속에 내가 있다.  
잔잔한 별빛이 흐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