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군.” 하늘에서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 눈을 바라보며 한 병사가 입을 열었습니다.  아무도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크리스마스 이브만이라도 전쟁을 벌이고 싶진 않다는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아침 나절부터 시작한 포격은 오후가 지나도록 계속되었습니다.  프랑스군과 독일군의 군복 자락은 눈에 완전히 얼어 있었지만 참호 밖으로 드러나는 상대방의 총 끝은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습니다.  서로 총을 겨누는 두 진영에서는 말할 수 없는 분노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왜 우리가 이 좋은 크리스마스 이브에까지 총칼을 겨누어야 하는가.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고요한 침묵이 눈보라 속에서 한 시간 넘게 흘렀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요?  갑자기 프랑스군의 한 병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더니 입을 열어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Oh Holy Night" 

오 거룩한 밤 별들 반짝일 때 거룩하신 우리 주 나셨네

허물과 죄로 고생하던 사람 위하여 만유의 주 오셨네

우리를 위하여 속죄하시려는 영광의 아침 동이 터온다

경배하라 천사의 노래 듣세 오 거룩한 밤

우리 구주 나신 밤

오 거룩한 밤 거룩 거룩한 밤

주님께서 쇠사슬 푸셨네 감사의 찬송을 부르세

주님의 법은 사랑과 평화로다 우리도 다 같이 사랑하세

영광의 찬송 함께 불러보세 거룩하신 주이름 찬양해

경배하라 천사의 노래 듣세 오 거룩한 밤

우리 구주 나신 밤

오 거룩한 밤 거룩 거룩한 밤

그의 노래는 프랑스군과 독일(프러시아)군 사이에 깊게 울려 퍼졌습니다.  조금 전까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던 그들은 마치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집안에서 성가를 듣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습니다.  그의 노래가 계속되는 동안은 모두들 전쟁을 잊은 듯 했습니다.  아름답던 노래가 끝나고 사방은 잠시 고요했습니다. 

그러더니 이내

“하늘 위에서 땅으로 내가 왔노라.”

하는 찬송가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반대편에 있던 프러시아 병사의 목소리였습니다.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젖어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만큼은 전쟁터에서 총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그들은 평화로운 가운데 영광의 크리스마스를 맞았다는 실화입니다. 

1870년 보불전쟁 당시 적군과 아군을 하나되게 했던 크리스마스의 의미가 오늘날 여전히 지구 한편에서 전쟁의 소용돌이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평화를 심어주길 소망합니다.

        Merry Christmas!

                                한상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