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수(2016-12-29 09:50:33, Hit : 1147, Vote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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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만차의 풍차

라만차의 풍차/송 대수


라만차 평원에 우뚝 솟은 콘수에그라 언덕의 풍차는 멈춰있었다. 따갑게 내려쬐는 태양아래  줄지어 서있는 거인들은 하릴없이 드넓은 평원을 바라볼 뿐이다. 바람의 언덕 끝에 있는 고성만이 주인이 있는지 없는지 구름도 바람도 멈춘 적막함 속에 저 멀리 보일 듯 말 듯한 사람의 기척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으려한다.

커다란 풍차의 입구에 수문장인 듯 긴 창을 곧추세우고 위엄을 갖추고 서있는 돈키호테의 철조각 상은 훅 불면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인다. 한때는 언덕에 버티고 있는 이 거인들을 무찌르기 위해 산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달려들던 돈키호테였는데, 400년 지난 지금 용감한 편력기사의 야위고 초라한 모습은 씁쓸한 느낌이다. 위태위태한 엇박자의 돈키호테가 타인으로부터 호되게 시련을 당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정의를 지키고 약자를 감싸려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금 로시난테를 추스르고 길을 나서는 돈키호테를 뭇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진 평야지대와 능선에 온통 심어진 올리브나무도 인상적이지만, 구릉과 산에 줄지어 늘어선 수많은 풍력발전기로 말해주는 스페인은 풍차의 나라, 아니 바람의 나라라 해도 좋을 듯하다. 지중해와 대서양의 물결이 만나고, 유럽과 아프리카의 바람이 만나고, 기독교와 이슬람이 만나 넓은 이베리아 반도를 한껏 달아오르게 해놓고는 조화롭게 변모시켜온 스페인이 아니더냐. 이곳은 어느 쪽에서 보면 끝이고 멈추는 곳이지만 다시 보면 새로 시작하는 곳이기도 하다.

대륙의 거친 소용돌이를 피해 이베로족, 켈트족, 서고트족 사람들이 이곳 따뜻한 지중해의 바람이 불어오는 유럽대륙의 끝자락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또한 아랍과 아프리카 대륙의 무어인들이 뜨거운 모래 바람과 함께 바다를 건너 비가 내리는 온화한 땅에 들어왔다. 강들의 대지라 부르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무어인이 통치하던 800여 년은 이슬람국가였지만 가톨릭과 유대교 등을 서로 인정하는 관용과 포용의 사회로 북아프리카와 함께하며 서유럽에서 경제적 부흥은 물론 예술과 건축 등 각 도시의 번영을 누렸었다. 하지만 종교의 광풍으로 갈등과 대립을 부추기면서 각자의 왕국에 몸을 맡긴 수많은 기사들이 이슬처럼 스러져갔다. 신사조 르네상스가 유럽을 휩쓸자, 이제 기사들의 전쟁은 끝나고 학문, 예술, 건축, 상업 등 새로운 활력을 찾게 됐다.

국토회복전쟁이라는 스페인 통일과업을 이룩한 이사벨여왕은 지구의 끝을 향해 간 콜럼버스가 발견한 아메리카 신대륙을 통해 여인으로서 해가 지지 않는 유럽 패권 국가를 이룩하는 초석을 놓게 된다. 통일된 스페인 가톨릭왕조는 이슬람과 유대교를 철저히 배척하는 강력한 통치로 인해 더 이상 관용과 소통의 국가는 아니었다. 그래도 이슬람 사원을 가톨릭 성당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등 오랜 역사를 회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스페인의 지혜가 있어 다행스러웠다.

마드리드 그란비아 거리가 시작되는 스페인 광장에 우뚝 솟은 마드리드 탑에는 세르반테스의 상과 돈키호테, 산초, 둘시네아 등 작품 속의 인물상들이 있다. 근대소설의 시초라 일컫는 ‘라만차의 돈키호테’ 작가 세르반테스는 군인, 노예, 세금 징수원과 투옥생활로 굴곡진 인생을 살아내면서 일반 사람들이 볼 수 없었던 피폐한 사회구조를 보았는지 모르겠다. 지중해는 오스만 터키 제국이 지배하고 있었으며, 대서양에서는 영국이 시민계층의 사회적 진출에 힘입어 신흥강국으로 발돋움 하고 있던 즈음, 스페인은 여전히 라틴 아메리카의 식민통치의 폭력성과 국내의 이교도 처단을 위한 서로간의 갈등 등 어리석은 과거의 이념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세계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여 무너지는 것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이런 사회에서는 새로움을 추구하기 어렵다는 경종을 울리려 한 것이리라.

넓은 라만차의 평원에 흙먼지가 일자 멀리 말 탄 사내가 햇빛에 반짝이는 창끝을 겨누고 풍차의 언덕으로 힘차게 달려오는 듯하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길 수 없는 적과의 싸움에서 쓰러질지라도 상실에서 오는 좌절보다는 인간의 존엄에 대한 확신과 믿음으로 또 다시 일어서 나아가는 위대함이 엿보인다.

콘수에그라 언덕에서 알곡을 빻던 풍차는 우리의 삶 속에서 사라졌지만, 돈키호테의 삶을 새롭게 조명하려는 여행객들을 위해 말끔히 단장을 하고 언덕 위에 굳건히 서 있는 풍차를 보니 한 시대의 성쇠도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여는 시간의 단초였음을 새삼 느낀다. 거인의 날개가 다시 펄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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